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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대구의 한 수족관에서 오늘의 주인공 최성호 님을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 초등학생 자녀들과 함께 매장에 도착하신 성호 님. 그의 모습은 여느 가정의 육아 대디와 다를 바 없었는데요. 일상생활에 전혀 불편함이 없어 보여 환자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성호 님은 ‘레베르 유전성 시신경병증*’이라는 희귀질환을 확진받은 환자입니다. 초기엔 운전 등의 일상생활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눈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임상시험에 참여한 후 시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어요. 이제는 일상생활뿐 아니라 수족관 경영, 육아도 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성호 님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레베르 유전성 시신경병증Leber hereditary optic neuropathy
- 세포 내 에너지를 생성하는 미토콘드리아 DNA의 돌연변이에 의한 유전성 질환이에요. 통증은 없지만 시력이 급속하게 떨어지며, 두 눈에 동시에 생기기도 하고 몇 개월 차이를 두고 생기기도 해요. 대부분 시력이 영구적으로 소실돼요.
2018년에 레베르 유전성 시신경병증을 진단받으셨어요. 이 질환은 어떤 병인가요?
유전성 희귀질환이에요. 점점 시력이 떨어져서 나중에는 실명이 될 수도 있어요. 처음 이상하다고 느꼈던 건 2018년 7월 정도쯤? 갑자기 왼쪽 눈에 검은 잔상 같은 게 보이더라고요. 평소에도 햇볕이나 강한 빛을 보면 잔상이 남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잔상이 점점 커지고 시력이 떨어졌어요. 근처 안과에 갔더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권유하셔서, 대구에 있는 동산병원으로 갔어요.
동산병원 진료는 어떠셨나요?
여러 검사를 받았는데, 선생님이 처음부터 레베르 유전성 시신경병증 같다고 하셨어요. 원래 이 질환 자체가 다른 질환과 착각하기 쉬운데, 마침 선생님께서 관련 학회를 다녀오셔서 알고 계신 것 같더라고요.
그때 유전질환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보통 유전질환은 어릴 때 발병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서른이 넘은 나이에 유전질환이라고 해서 너무 의아했죠. 그래서 유전자 검사를 해 보니 바로 레베르 유전성 시신경병증이라는 결과가 나왔어요.
보통 확진을 받을 때까지 평균 7년 정도 걸리는데요, 굉장히 빠르게 확진을 받으셨네요.
그 점은 운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빠르게 확진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대요. 이미 상태가 많이 악화된 상황에서 마지막 수단으로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거든요.
남들보다 일찍 확진을 받으셔서 다행이지만, 그래도 걱정이 크셨겠어요.
의외로 극초기엔 담담했어요. 안경을 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처음엔 왼쪽 눈만 증상이 나타나더니 나중에는 오른쪽 눈까지 나빠져서 심각하다고 생각했죠.
또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유전질환이라는 점이 많이 걱정됐어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가장 먼저 여쭤본 것도 유전 여부였어요. 다행히 모계 유전이라 아빠로부터 자녀에게는 유전되지 않는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었어요.
대만에서 임상시험을 받으셨잖아요. 어떻게 참여하시게 된 건가요?
임상시험이 있다는 것은 시신경염 환자들이 모이는 카페에서 처음 알게 됐어요. 김안과병원 김응수 교수님께서 그 카페를 운영하셨는데, 교수님이 한국에서 환자들을 대만으로 연결해 주시는 거점 역할을 하셨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임상시험을 연결해주시는 분이 김안과병원 김응수 교수님과 분당 서울대학교병원 황정민 교수님, 두 분밖에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 김안과병원을 통해 임상시험에 참여하신 거군요. 참여 자격이 따로 있었나요?
네. 여러 조건이 있었는데요. 기억나는 건 발병한 지 1년 이내여야 했고, 나이나 증상 제한도 있었어요. 같이 참여하신 환자들 중에 나이 조건이 하루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맞아서 참여하게 되신 분도 계셨어요. 그리고 유전자 검사를 받으면 유전자 번호가 나오는데, 그 번호가 맞아야 참여할 수 있었어요.
- Editor's Note
- 보통 희귀질환 임상시험은 자격 조건이 까다로워 신청한다고 해서 무조건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최성호 님이 참여하신 임상시험은 발병 시기, 나이, 증상, 유전자 번호 등의 조건을 통과해야 참여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그러니 임상시험 신청에 앞서 의료진과 미리 자세한 상담을 받아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대만 임상시험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처음에 갔을 때 열흘 정도 있었어요. 대만에 간다고 해서 바로 임상시험을 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첫날에는 혈액 검사, 시력 검사, 성병 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받았어요.
그 후에 며칠 동안 대기하다가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어요. 한쪽 눈에는 위약을 넣고 다른 쪽 눈에는 진짜 약을 넣었다고 들었는데, 어떤 약이 진짜인지는 의료진도 모른다고 해요. 그렇게 시술받고 그다음 날 바로 귀국했죠.
부작용이 걱정되지는 않으셨나요?
부작용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요. 눈 상태가 좋지 않아서 정말 절실했거든요. 임상시험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어차피 시력을 잃게 되는 건 마찬가지였으니, 뭐라도 해 보자는 심정으로 참여했어요.
그럼 대만에는 총 몇 번을 가신 건가요?
열 번 정도 갔어요. 처음에만 열흘 정도 있었고, 그다음부터는 한 번 갈 때마다 2박 3일씩 있었어요. 처음 갔을 때만 주사를 맞았고 다음 방문부터는 진찰만 두어 시간씩 했어요.
작년에도 원래 대만에 갔어야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 갔어요. 격리 비용까지 지원해 줄 테니 대만으로 오라는 제안도 있었는데, 저희 부부가 자영업을 하다 보니 입국 전후로 격리 기간이 너무 길어서 못 갔죠. 이제 두 번 남았네요.
임상시험 결과가 좋았다고 알고 있는데요. 증상이 얼마나 좋아지셨나요?
처음에는 체감될 만큼 드라마틱하게 좋아지진 않았어요. 그냥 시력 검사하면 조금씩 나아지다가, 대만에 처음 방문하고 1년 정도 지났을 때부터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체감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검사 항목 중에 시야 검사라는 게 있는데요. 눈의 위치를 고정해 놓고 암실에서 불을 깜빡이면서 시야가 어느 정도인지를 측정하는 검사에요. 그런데 대만에 가서 검사할 때마다 암점이 점점 줄어드는 거예요. 솔직히 처음에는 걱정했는데, 갈 때마다 결과가 좋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았어요. 마지막으로 대만에 갔을 때는 대만 의료진이 축하한다는 말도 해 줬거든요. 대만에 또 가고 싶네요.
정말 다행이네요. 그런데 왜 매번 대만까지 가야 하는지 의문이 들진 않으셨나요?
처음에는 그런 의문이 들었죠. 우리나라 의학 수준이 높잖아요. 그런데 왜 이런 임상시험은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잘 투자하면 세계적으로 뒤쳐질 것 같진 않은데 안타까워요. 알아보니 국내에서는 유전자 기반의 임상시험이 거의 없다고 들었어요. 유전자 치료 자체가 국내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도 있고요.
더 큰 문제는 임상시험이 끝나고 약품이 만들어져도 약값이 너무 비싸다는 거예요. 지금 레베르 환자들이 먹는 약(락손)은 한 달분 가격만 600~700만 원 정도예요.
많이 비싸네요. 임상시험이 잘 되어서 새로운 치료제가 나오면 가격이 좀 내려가지 않을까요?
3상이 끝나면 치료제가 출시되지 않을까 예상하고는 있어요. 출시되면 다행이긴 하지만 여전히 가격이 문제죠. 산정특례 혜택을 받게 되면 좀 저렴해질 것 같기도 하지만, 된다 해도 1년에 몇천만 원이 든다고 해요. 이런 어마어마한 돈을 일반인들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국내에서도 임상시험이 좀 활발하게 이뤄져서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럼 완치가 되신 건가요? 앞으로의 치료 계획도 궁금합니다.
암점이 조금 남아 있기는 한데 초기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거예요. 처음에는 시야 중간에 암점이 있어서 정면에 있는 물체를 보려면 옆 눈으로 봐야 했거든요. 앞으로 다른 치료 계획은 딱히 없고, 지금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목표에요.
주변 환우들에게 임상시험 참여를 권유하는 편이신가요?
권유하긴 해요. 그런데 제가 참여했던 곳에서 진행하는 임상시험이라면 추천하지만, 제가 참여해 보지 않은 곳에서 진행하는 임상시험이라면 선뜻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환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거예요. 임상시험이 있다고만 하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뭐든 다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거든요. 아마 희귀질환을 앓고 계신 분들은 거의 다 비슷한 마음이실 것 같아요.
끝으로 같은 질환을 앓고 계신 환우에게 하시고 싶은 조언이나 말씀이 있으실까요?
평범하게 생활하다가 갑자기 눈앞이 안 보이면 심적으로 정말 힘들어요. 장애인 자살률이 높은데, 힘드시겠지만 나쁜 생각은 하지 마시고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흡연이나 음주는 절제하면서 몸 상태를 잘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시고, 희망을 갖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다 보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힘내세요!
지금까지 레어노트 회원이신 최성호 님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해 드렸어요. 임상시험 참여를 통해 좋은 효과를 얻으셨다는 성호 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기뻤습니다. 그렇지만 성호 님처럼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든 환자들이 대부분이고, 저렇게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정말 큰 운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아무쪼록, 최성호 님과 가족들이 앞으로도 행복한 삶을 누리길 바라며 인터뷰를 마무리지었습니다.
레어노트는 앞으로도 희귀질환을 앓고 계신 여러 환자들을 직접 만나 그분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해 드릴 예정이에요. 2편에서는 ‘진행성 골화섬유형성이상’으로 투병 중이신 신동혁 님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릴게요. 그럼 다음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