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레어노트 팀입니다.
지난 주에는 평소에 접하기 어려웠던 환자의 보호자 이야기를 전해 드렸어요. 

루게릭병을 앓고 계신 아버지와 가족의 이야기를 연재 중이신 박은선 작가님께서 여러 가지 감정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으셨는데요. 
지난 편에 이어, 이번 편에서는 작가님처럼 희귀질환 환자를 가족으로 두신 분들께 꼭 전해 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희귀질환 환자의 보호자에게 필요한 마음

아버지 투병 생활을 오래 지켜보셨잖아요. 보호자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있을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희귀질환 투병은 장기전인 만큼 지치지 않도록 계속해서 자신을 돌봐야 한다는 거. 두 번째는 자기 연민을 갖지 않는 거예요.
환자를 돌보려면 돈이든 시간이든 보호자의 희생이 필요하니까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이 가엾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거든요. 그때 환자랑 보호자가 갈등을 가장 많이 빚기도 하고요.

미디어에서 그리는 보호자의 모습은 환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내어 주는 헌신적인 존재잖아요. 그런데 이게 막상 내 일이 되면 정말 쉽지 않거든요. 아픈 누군가를 오랜 시간 지켜보면 때로는 지치기도 하고요. 환자는 또 환자대로 아픈데다가 힘든 점도 많다 보니 서로 예민해질 수 있어요. 그러다 보면 환자와 보호자 사이에 마찰이 일고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데, 그럴 때 보호자의 자기 연민이 계속되면 힘들어요. 저희 가족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고요. 

정리하자면 희귀질환 환자를 돌보는 일은 굉장히 긴 싸움이니까, 간병에만 몰두하기보다는 반드시 나만의 시간을 가지셔야 해요. 자기 연민을 갖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요. 이렇게 두 가지는 꼭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작가님 어머니는 간병 외에 자기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어머니는 근면 성실이 몸에 밴 분이셔서 아버지를 돌보시지 않을 때는 다른 소일거리를 이것저것 하세요. 밭에서 일하실 때도 있고, 뜨개질도 하시고요. 또 아픈 사람을 두고 다른 곳에 오래 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세요. 그래서 최대한 아버지 곁에 계시되, 주변 이웃분들이랑 틈틈이 교류하면서 스트레스를 분산하려고 많이 노력하세요. 

사실 귀촌하시기 전에는 일하고 돌아오자마자 간병하셔야 하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셔서 종종 아버지랑 다투기도 하셨거든요. 그런데 귀촌하고 당신을 돌보실 수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 생긴 뒤부터는 두 분이 부딪치는 일이 많이 줄었어요. 먼저 귀촌하신 큰이모가 근처에서 도와주시기도 했고요. 

귀촌을 결정하기도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맞아요. 근데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아프시면서 가계 사정이 조금씩 힘들어졌는데, 생활비가 많이 드는 도시보다는 상대적으로 자급자족도 가능하고 탁 트인 자연이 있는 농촌에서 지내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 적은 없지만, 아버지께서 건강이 점점 악화하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책임감이 굉장히 강한 분이시거든요. 상태가 더 나빠져서 자식들한테 짐이 되기 전에 어머니와 둘이서만 지낼 수 있는 공간으로 가야겠다고 판단하신 것 같아요. 이런저런 요소가 겹쳐서 그렇게 귀촌을 결정하시게 됐죠.  

그래도 도시에 비해 병원 가기는 힘드실 것 같아요.

네. 거동이 힘드시니까 병원에 가려면 장애인 콜택시나 사설 구급차로 이동해야 하는데 장애인 콜택시는 사전 예약이 불가능하거든요. 이틀 전쯤 연락해서 배차를 받는데 원하는 시간에 되는 것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사설 구급차를 이용하자니 너무 비싸고요.

또 다른 문제는 접근성이에요. 아버지가 항상 대학병원만 다니시는 건 아니고, 동네 병원에서 치과 검진을 받거나 가볍게 병원에 다녀와야 할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병원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문턱이 높아서 휠체어가 지나다닐 수 없거나, 휠체어 탄 분을 옮길 만한 인력이 없거나 하면 콜택시나 구급차가 잡혀도 소용이 없어요. 실제로 힘들게 병원까지 갔다가 허탕 치고 돌아온 적도 있어요.

여전히 우리나라 곳곳에 복지 사각지대가 참 많더라고요. 저도 아버지를 통해 겪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겠죠. 그럴 때마다 고민이 많아져요.

Editor's Note
우리나라에서는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분들을 위해 '장애인 콜택시'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요. 하지만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택시 공급, 지나치게 긴 배차 간격, 지역간 이동 제한 등으로 여전히 많은 분들이 이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올해 7월부터는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시행되며 전국 어디에서나 장애인 콜택시를 24시간 이용할 수 있고, 환승 없이 운행 가능한 범위를 확대한다고 해요. 

아버지가 투병하신 이후로 작가님께 나타난 변화가 있나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더 넓어지고 세밀해진 것 같아요. 
부끄럽지만, 저도 아버지가 아프시기 전까지는 병이나 장애를 바라보는 시야가 매우 좁았고 편견도 많았어요. 휠체어 타시는 분들로 대중교통이 지연될 때면 '왜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라는 부끄러운 생각을 서슴없이 하기도 했죠. 집안에 질환을 갖고 계신 분이 전혀 없기도 했고, 저희 아버지도 돌도 씹어 드실 만큼 건강한 분이셨거든요. 병이나 장애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아버지께 병이 생기고 저희 가족의 일이 되니까 관련 이슈나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동안 제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얼마나 어리석고 협소한 생각을 가졌는지 반성도 많이 하게 돼요.

보호자도, 다 똑같은 사람인걸요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를 대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을까요?

보호자를 대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기보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매너의 문제인 것 같아요.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더라도 우리가 암묵적으로 지키는 사회적인 예의나 규칙, 매너가 있잖아요. 희귀질환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저 같은 경우에도 누가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어머 어떡하니, 너 앞으로 어떡하니’ 이런 식으로 안쓰러워하시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거든요. 물론 힘든 점이 있는 건 맞는데, 어쨌든 저도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직장생활도 하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핸드폰 보다가 밤늦게 자기도 해요. 되게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거든요. 가끔 과한 동정을 받을 때는 오히려 스스로를 검열하게 돼요. ‘뭐지, 내가 이렇게까지 가여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인 건가?’ 하고요. 

그러니까 너무 동정할 필요도 없고, 병에 대해 무례하게 꼬치꼬치 캐묻는 등의 태도만 지양해 주시면 큰 문제는 없지 않을까 해요. 물론 사람마다 다르니까, 저랑은 반대로 환자의 상태를 물어봐 줬으면 하는 분도 계실 수 있죠. 결국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면서 각자의 성향에 맞게 대응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레어노트 사용자 중에도 자녀의 질환이 자기 탓 같다고 하는 보호자들이 계신데요.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고민되더라고요.

저도 처음에는 아버지가 아프신 게 제 탓 같아서 되게 괴로웠어요. 제가 유학을 다녀와서 부모님이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거든요. 혹시 내가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줘서 아프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독자분들께서 개인 메시지로도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해 주시는데요. 자책하는 분들께는 절대 당신 탓이 아니라는 말, 그리고 너무 혼자 안고 가려고 하지 말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라는 위로를 해 주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너무 같이 슬퍼하기만 하면 오히려 그 슬픔이 해소되지 않고 점점 깊어질 수 있으니, 담백하게 다가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루게릭병 환자를 가족이나 지인으로 둔 분께 전하고 싶으신 말이 있나요?

환자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저는 행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망설이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무슨 말이냐면, 환자를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모시는 걸 마치 환자를 버리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건 본인이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함부로 얘기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회적 인식이 보호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고요. 사회적 평판을 아예 신경 쓰지 않을 순 없으니, 사람들에게서 손가락질 받을까 봐 두려워들 하시죠.

저희 아버지도 이제 휠체어에 2시간 이상 앉아 계시면 고통스러워하시거든요. 누워 계시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실 가정에서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서 의료 기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해요. 어머니께서도 슬슬 요양원을 알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시는데, ‘그래도 엄마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야 나중에 어디 가서 남부끄럽지 않게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하시더라고요. 아픈 가족을 직접 돌봐야 하는 건 우리인데 남의 시선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현실이 좀 씁쓸했어요.

경제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기관의 도움을 받아서 모두가 조금은 편해질 방법이 분명히 있는데도, 주변의 시선 때문에 망설이는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제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요양보호사를 쓰든 간병인을 쓰든 행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무조건 이용하세요. 

그리고 환자를 온전히 간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죄책감 느끼시지 말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러나저러나 환자를 가장 많이 생각하는 건 남이 아닌 가족이거든요. 의료 기관에 도움을 부탁한다고 해서 나쁜 게 아니에요. 선택할 방법이 있다면 망설이시지 말라고, 보호자 입장에서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정말 중요한 말씀 해주셨네요.
이제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하려고 하는데요. 
마지막으로 아버님께 전하고 싶으신 말이 있나요?

자식 입장에서는 최대한 오래 저희 곁에 머물러 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커요. 
“아버지, 오래오래 저희 곁에 계셔 주세요.”라는 한 마디를 전하고 싶어요. 


 

저희가 전해 드릴 박은선 작가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희귀질환 환자의 가족으로 지내면서 느꼈던 일부터 희귀질환 환자의 보호자가 아닌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의 생각 등, 진솔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작가님의 따스하고 굳센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그동안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던 보호자의 입장도 알 수 있었답니다. 

작가님께서 말씀해 주셨듯, 앞으로 다양한 콘텐츠로 세상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밝은 빛을 비추어 주는 멋진 크리에이터로 성장하실 거라고 믿어요. 곧 서울에서 열리는 작가님의 전시회에 꼭 참석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내일은 2월 28일 세계 희귀질환의 날이에요.
28일에는 희귀질환의 날에 어떤 역사가 있는지, 희귀질환의 날을 상징하는 얼룩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행사는 무엇인지 등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전해 드릴 계획이랍니다.

그럼 내일 만나요! 

박은선(긍씨) 작가님은요
〈평범해서 특별한, 긍씨의 글림일기〉라는 제목으로 인스타그램에서 활발한 연재를 하고 있는 크리에이터입니다. 인스타그램 외에도 전시회,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어요.

이 콘텐츠는 어때요?

희귀질환의 날을 맞아 준비했어요.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