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오고 나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나니 두통과 졸림 등이 많이 좋아졌다. 첫번째 시도에서 통증이 많이 줄어들어서 마약성진통제 감량을 시도했는데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다시 원래 용량으로 돌아갔다. 통증은 원래 일상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수면을 방해하는 수준에서는 이득이 없다.
다음주에는 안과, 임상유전체의학과, 통증센터 외래 진료가 있는 날이다. 평소처럼 일주일 전부터 여러가지 기록들을 다시 모아서 정리를 한다. 나는 기록에 집착을 하는 하이퍼그라피아를 가지고 있다. 나는 가끔 내 생각을 기록해서 뇌에서 없애지 않으면 생각이 멈추지를 않는다.
이번에는 230장의 엘러스단로스증후군 환자들이 임상적으로 겪는 다양한 증상에 대한 슬라이드를 여러 번 읽어보고 내가 겪고 있는 것들을 교수님들과 상의를 하려고 한다.
우선 치료과정 중에 마취 중 수면상태가 유지되지 않은 이유들은 이미 충분한 근거들이 많이 있다. 엘러스단로스증후군 환자들은 콜라겐 결함으로 인한 다양한 조직의 흡수장애를 겪는데 우선 우리가 흔하게 쓰는 마취제인 리도카인이 효과가 미비하거나 거의 없는 경우도 있다. 조직에 스며드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 다음으로 많이 사용하는 부피바카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국소적 마취에는 로피바카인을 쓰도록 권유한 근거를 바탕으로 현재는 로피바카인을 국소적 마취제로 사용한다. 그 외에 침윤마취나 경막외 마취를 위해서는 메피바카인을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마 이번에 침윤마취에 두번 실패를 한 이유는 리도카인이 원인일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나는 미다졸람으로 진행한 검사에서 80퍼센트는 각성상태로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 번 치료를 위해서는 이 부분을 반드시 교수님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
케타민 치료 자체는 나에게 굉장히 좋은시도였지만, 개인의 특수한 상황에서 어떤 약물을 처방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특수한 상태를 지닌 희귀질환자들에게는 매번 부딪히는 문제다. 나는 의료진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지만 내가 가진 신체적 상태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가능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설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려고 노력한다. 환자가 자신의 질병의 상태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를 체계적으로 가지고 있으면 이러한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나는 진단받은지 1년 6개월 동안 단기간 안에 나의 다양한 증상들의 호전을 약물변경을 통해 실제로 경험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가진 진정성과 의지가 교수님들에게도 전달됐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간 2주마다 또는 4주마다 자주 만나면서 상태가 좋지 않을 때에는 진심으로 걱정을 많이 해 주셨다.
나는 의료적 상황에서의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있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이 점과 점이 이어져 의미있는 선분이 만들어지려면 때로는 내가 마음을 열어야 하거나 의료진이 마음을 열고 들여다 봐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희귀질환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의료진의 관리를 얼마나 잘 받으면서 내 삶의 질을 높여나가는데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활용하는지가 관건이 된다. 그런데 많은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진료실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상황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성인이 되면서 혼자서 치료를 받으러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단 한번도 의사와 대화를 하는 것이 어렵거나 불편한 적이 없었다. 대부분 의사와 어떻게 하면 적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 묻기도 한다. 어떤 교수님은 '환자로 살아가기'라는 책 제목까지 지어주시면서 책을 써보라고도 했다. 나는 진료실안에서 내 자신의 감정을 절반은 덜어낸다. 내가 겪는 어려운 점들을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고 당장 해결이 시급한 점을 중점적으로 이야기를 한다. 어차피 진료는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사소한 증상은 기록은 해두지만 진료실의 복잡도를 낮추기 위해 언급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면 매우 불편한 증상에 대한 해결방법에 집중하고 그 다음으로 넘어갈 수가 있다. 나는 의료쇼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록의 측면에서 기록이 분산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가 정말로 견디기 어려운 수준의 인격을 가진 것이 아니라면 한 의사를 장기간 만난다. 나는 지금도 19년전 의사를 가끔 만난다. 왜냐하면 그 분만큼 내가 아픈시절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기억하고 이해해주는 의사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감정적 어려움은 정신과 의사와 함께 한다. 나는 질환으로 인한 불안, 유전력으로 인해 내재된 특정상태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족 중에 유전력을 보유한 사람은 50세 이상 살지 못했고 어떤 논문에도 그러한 내용들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관리를 하면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내 스스로 증명해 나가려고 다짐을 한다. 의학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나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 관리를 열심히 하면서 내 생존에 대한 불안과 투쟁하고 승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