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 희귀질환 환자 커뮤니티
저는 태어나서부터 몸이 아주 많이 약했어요. 백일무렵 장중첩으로 개복수술을 해야했고 그 때 죽을 뻔 했다 들었어요. 이후 유치원 다닐 무렵에는 뇌수막염으로 아주 호되게 앓았구요. 9살에 이미 베체트를 의심한다는 진단을 받았고 일찌감치 "아, 나는 남들과는 조금 다르구나." 스스로 깨달았어요. 시험이나 숙제를 벼락치기하는 친구들과 다르게 저는 절대로 밤늦게 자선 안된다는 생각이었죠. 숙제도 미리! 시험공부도 미리미리! 남들은 쌍화탕 먹고 푹 자면 되는 감기가 저는 폐렴이 되어 입원을 하고, 응급실에 뛰어가고 멀쩡한 신장에, 방광에, 안와에 뜬금없이 염증이 생기고 악화되고 겨우 치료하고를 매해 반복했어요. 그렇게 남들보다 많이 비실비실했던 저는 서울에 있는 대학의 전자공학과에 가게 되었어요. 주변에선 재수를 하라는 말도 들었지만 저는 제가 자랑스러웠어요. 제 몸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선 정말로 최선을 다했거든요. 대학을 마치고 첫 회사를 다니게 되었어요. 전자공학과를 나왔으니 센서 제조 회사의 소프트웨어팀이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어요. 업계 특성상 야근과 주말특근, 출장이 너무 잦다는 점 때문이었죠. 팀 내에 여자 연구원은 저뿐이었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손목 수술도 하게 되었고 신종플루에 폐렴에 또다시 비실비실 아프기 시작했어요. 입원도 몇 번 했고 응급실도 또 몇 번 다녀왔죠. 그러다 임금이 체불되기 시작했어요. 임금체불 문제로 같은 직종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지만 이직한 회사를 다니면서도 해결되지 않은 전회사의 임금문제 때문에 노동청에, 법원에, 전회사 사장과의 언쟁에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온몸이 아파왔고 자도자도 피곤했어요. 구강과 생식기엔 늘 궤양이 있었고 여기저기 알 수 없는 혹이 생겼고 관절도 여기저기 붓고 아팠어요. 두통도 정말 심했고 무엇보다 의문의 불안감에 식사를 잘 할 수가 없었어요. 몸무게가 갑자기 10kg이 빠졌습니다. 원래도 정상체중에 못미쳤는데 말이에요. 이러다가 죽겠다 싶어 회사를 그만두고 병원에 갔어요. 의사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암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어요. 많은 검사를 했고 암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여러과를 전전하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류마티스과에서 베체트, 합병증으로 섬유근육통 진단을 받았어요. 그제서야 어릴 때부터 약했던 몸이 납득이 가더군요. 한동안은 회사에 다닐 수가 없었어요. 거의 매일 대학병원을 가고 수시로 입원치료가 필요했거든요. 문득 내가 이런 몸으로 전자분야의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아둔 돈을 털어서 제가 평소 관심있었던 그래픽 디자인을 배우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나중에 프리랜서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시작한 공부였어요. 치료와 공부를 병행하는 시간이 1년정도 걸린 것 같아요. 그렇게 포트폴리오가 완성되고 병이 조금 완화된 것 같은 시점에 디자인 회사에 다시 신입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병든 몸으로 회사를 다니는 건 정말 힘들더라구요. 금요일에 퇴근하면서 대학병원에 진료를 보고 바로 입원하고 일요일에 퇴원하는 생활이 몇번 반복되었어요. 스트레스를 조금만 받아도 바로 몸이 아프다 그만둬라 신호를 보냈어요. 베체트성 장염에 약을 투여하다 간수치가 급격히 안좋아져서 또다시 입원. 하루하루가 정말 병과의 사투인지 업무와의 사투인지 알 수 없는 일상을 보냈어요. 그럼에도 희귀난치병을 가진 사람을 회사에서 선뜻 받아줄리 없다는 생각 때문에 한번도 외부에 내몸상태가 이렇다 말해본적은 없어요. 심지어 친하던 친구들도 제가 긴 시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연락이 뜸해지더니 이젠 거의 남남같은 불편한 사이가 되어버렸거든요... 친구도 그런데 어떻게 순전히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에서 제 건강에 대한 문제를 이해해줄까 싶더라구요. 그러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게 되었어요. 지금의 남편 그러니까 당시 남자친구는 제가 베체트 진단받던 날에도, 투병하면서 입퇴원을 반복하던 날에도 항상 곁에 있어주던 사람이었어요. 입원했을 때는 병원에 와서 제 머리를 감겨주기도 하고 병원 내에서 데이트할만큼 절 많이 아껴준 사람이었어요. 남편과 결혼하고 한동안은 쉬면서 치료에 몰두해보자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모든 일을 멈추고 가정주부(?)의 삶을 시작했어요. 회사를 다니던 제가 집에서의 낮시간에 무료함을 느낀다고 하니 남편의 제안으로 유튜브도 시작했어요. 그냥 제가 좋아하는 뜨개 영상을 하나 둘 꾸준히 올리다보니 기대도 안했는데 구독자가 4200명이 넘어갔더라구요. 그렇게 4년정도가 흘렀을 무렵, 대학 졸업 이후 연락이 끊겼던 친구의 소개로 다시 스타트업 전자회사에 계약직으로 일하게 되었어요. 이번엔 솔직하게 지금 제 몸상태를 이야기했고 병원에 가는 날과 뜨개 강사 자격증 수업날은 배려해주기로 약속을 받고 출근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벌써 계약직 생활을 한지 8개월이 되어갑니다. 지금은 뜨개 강사수업과 회사생활, 유튜브까지 병행하고 있네요. 좀 더 먼미래에는 뜨개 수업을 하는 작은 공방을 운영하고 싶은 꿈이 생겼거든요. 여전히 제 몸은 아픕니다. 뜬금없이 열이 올라 새벽에 응급실에 갈때도 있고 갑자기 위가 기능을 멈춰 구토할 때도 있고 무릎이 쑤셔서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또 견디면 살아지더라구요. 처음 진단을 받고는 죽고싶을만큼 우울했어요. 첫회사부터 임금체불을 당하더니 베체트에 덜컥 확진되고 몸은 자꾸 악화만 되는 것만 같으니 매일 침대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울기만 했던 것 같아요. 가족들이 잘 때 몰래 자살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요. 그런데 그런 시간도 지나가더라구요. 정말 놀랍게도요.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던 저는 8년 전의 과거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침에 눈을 떠서 사람들 틈에 끼어 출근하는 것이 못견디게 감사하고 인파에 끼어 퇴근하는 제 모습이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지더라구요. 요즘은 남편과 함께 저녁 식사하는 시간이 그렇게 행복하네요. 병원에서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좋아졌다 얘길 들으면 정말 기쁘고요. 남들에게 베체트 그게 뭐냐고 치료할 수 없는 희귀난치병이라니 어쩌다가 그리됐냐고 불쌍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그런 병을 안고도 이렇게 열심히 고민하고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긴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아마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힘들어하면서 살아가실 거라고 생각해요. 조금이나마 힘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2023.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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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
오아시스
중증 근무력증

환자
저도 구독할게요😆 너무 멋지시고 존경스럽네요
2023. 6. 23.
2
희귀질환·암질환 환우들이 작성한
10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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