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하버드 대학 소속 연구진이 쥐의 시력을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최근 네이쳐Nature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시력에 이상이 있는 쥐에 야마나카 인자를 투여해 시신경 재생 및 시력 개선 효과를 확인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야마나카 인자Yamanka factor란 유전자 발현에 관여하는 전사 인자의 한 종류로, 이미 역할이 정해진 세포가 줄기세포의 특징과 기능을 갖도록 돕는 물질입니다.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 교수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습니다.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누구인가요?
야마나카 신야는 최초로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를 개발한 공로로 노벨 생리 의학상을 받은 일본의 교수입니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 대부분은 이미 역할이 정해져 있어 저마다 특화된 기능을 수행합니다. 예를 들어, 간세포는 해독 및 대사 작용에 필요한 기능을, 망막세포는 눈으로 들어온 빛을 시각 신호로 해석하는 기능을 합니다. iPSC는 이러한 체세포에 특정 전사 인자를 발현시켜 줄기세포의 특성을 부여합니다. 뼈, 간, 심장 등 모든 장기의 세포로 발전할 수 있는 ‘만능성Pluripotency’을 갖도록 ‘유도’된다고 해 유도만능줄기세포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iPSC를 만들기 위해 체세포에 발현시킨 전사 인자는 Oct4, Sox2, Klf4, c-Myc로, 이 4개를 통틀어 야마나카 인자라고 합니다.
이번 연구는 후생유전학을 기반으로 이뤄졌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초기 DNA 메틸화 패턴에 변화가 생기는데, 이 변화가 유전자의 발현과 세포 기능에 이상을 일으켜 노화로 이어진다는 증거를 발견한 것입니다.

후생유전학이란 무엇인가요?
후생유전학Epigenetics이란 염기서열의 변화 없이 유전자의 발현을 변화시키는 유전학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DNA라는 유전 물질을 갖습니다. DNA는 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염기의 순서인 염기서열이 바뀌면 유전자 발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염기서열이 바뀌지 않고도 특정 화학 반응에 의해 유전자 발현이 조절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DNA 메틸화DNA methylation는 DNA의 염기에 메틸 그룹을 추가하는 과정으로,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거나 활성화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노화를 일으킨 변화를 되돌리면 세포를 젊게 만들 수 있다.’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여러 세포 중 가장 먼저 노화의 영향을 받는 중앙 신경계를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특히 시신경을 구성하는 망막 신경절세포RGC; Retinal ganglion cell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연구진은 야마나카 인자를 활용해 쥐의 RGC를 젊게 만들 수 있는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4개의 야마나카 인자를 쥐에 발현시켰으나 종양이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세포가 기존에 수행하던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유전자 조합을 연구했고, 야마나카 인자 중 종양 발생 가능성이 있는 c-Myc를 제외한 3개(OSK; Oct4, Sox2, Klf4)만 발현시켰습니다. OSK를 발현하는 유전자를 아데노 연관 바이러스에 삽입해 쥐의 혈관으로 전달하고, 특정 물질을 주입해 이를 발현시키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부작용이 없었으며 세포의 기능 또한 유지되었습니다.
아데노 연관 바이러스란 무엇인가요?
아데노 연관 바이러스AAV; Adeno-associated virus는 인간의 세포를 침투하되 질병을 유발하지 않는 작은 크기의 바이러스입니다. AAV는 원하는 위치에 유전 물질을 안정적으로 삽입할 수 있고, 면역 반응 또한 약하게 일어나 유전자 전달을 위한 운반체로 활용됩니다.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데노바이러스Adenovirus로 실험을 하던 중 발견되어 아데노 연관 바이러스로 명명되었습니다.
쥐를 대상으로 OSK를 활용한 유전자 치료의 안전성을 실험한 연구진은 시신경이 손상된 쥐, 녹내장에 걸린 쥐, 나이가 많은 쥐의 시력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관찰했습니다.
[연구 결과 1] OSK, 손상된 쥐의 시신경을 재생시키다
연구진은 OSK를 발현하는 AAV를 쥐의 유리체 내에 주사했고, 2주 뒤 해당 쥐의 시신경을 물리적으로 훼손했습니다.
2주 후, 시신경이 손상된 쥐는 재생된 RGC의 양이 5배 증가했고 그 생존율 또한 2배 증가했습니다. 특히 12~16주 동안 OSK를 발현시켰을 때, RGC의 길이가 5mm 이상 재생되었습니다. 반면, OSK 발현을 억제했을 때는 RGC의 재생 및 생존율 개선 효과가 매우 떨어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줄기세포와 같은 세포 재생 치료의 경우, 대개 어린 쥐에서만 효과가 있고 나이 든 쥐에서는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에 연구진은 나이가 많은 쥐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이전 실험보다 재생된 RGC의 양은 줄었으나 3주를 추가로 OSK를 발현시키자 RGC의 재생이 증가했습니다. 이는 OSK가 노화 정도와 무관하게 시신경 재생 효과가 있음을 입증한 것입니다.
[연구 결과 2] OSK, 녹내장에 걸린 쥐의 시력을 되돌리다
연구진은 녹내장과 같은 질환으로 RGC의 기능이 손상된 경우에도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는지 알아보기 위해 두 번째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녹내장이란 무엇인가요?
녹내장Glaucoma은 RGC의 손실을 동반하며 시신경이 손상되는 병으로, 60세 이상 노인 실명의 주요 원인입니다. 대부분 높은 안압으로 발생하지만, 혈액 순환의 이상을 비롯한 다른 원인도 함께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녹내장은 말기가 되어서야 겉으로 증상이 드러나기 때문에 조기 발견과 치료가 중요합니다.
OSK를 발현하는 AAV를 녹내장에 걸린 쥐의 한쪽 눈에 주사했고, 4주 뒤 RGC 밀도가 회복되었으며 시력 또한 상승했습니다. 이는 녹내장으로 시신경이 손상된 후 시력이 회복된 첫 사례로, 질병의 악화를 지연시키는 데 집중했던 과거의 연구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입니다.
[연구 결과 3] OSK, 나이 든 쥐의 시력을 회복시키다
마지막으로 연구진은 노화에 의한 시력 저하도 회복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세 번째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OSK를 발현하는 AAV를 나이 든 쥐(생후 11개월)에 주사했고, 4주 동안 OSK를 발현시켰습니다. 그 결과, 시력이 크게 좋아졌으며 유전자의 발현량 또한 젊은 쥐와 비슷한 수준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추가 연구] OSK, DNA 메틸화를 되돌리다
연구진은 세 실험을 거치며 확인된 효과가 DNA 메틸화와도 관련이 있는지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DNA 메틸화 패턴에 변화가 일어난 쥐의 DNA가 OSK 발현 덕분에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OSK를 활용한 유전자 치료제가 녹내장뿐 아니라 노화 관련 질환을 치료하는 데 쓰일 수 있음을 입증한 것입니다. 특히, 건강한 망막을 이식받지 않고도 시력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포 재생 치료 기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줍니다.
지금까지의 실험에서는 부작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쥐가 아닌 다른 동물 실험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연구진은 해당 기술을 라이프 바이오사이언스Life Biosciences사로 이전했고, 추후 전임상 실험에서도 안전성과 효능이 확인된다면 녹내장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참고 문헌
1. Glaucoma. Mayo Clinic
2. Harvard Medical School. Scientists reverse age-related vision loss, eye damage from glaucoma in mice
3. Introduction to Adeno-Associated Virus (AAV). VECTOR BIOLABS
4. Ledford H. Reversal of biological clock restores vision in old m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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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Schmidl D, Schmetterer L, Garhöfer G, Popa-Cherecheanu A. Pharmacotherapy of glaucoma. J Ocul Pharmacol Ther. 2015;31(2):63-77.
7. 권오빈. 줄기세포를 사용한 연구 및 치료
8. 후생유전학. 생화학백과